1818년경에 편찬된 『대둔사지(大芚寺誌)』에는 해남 대흥사의 창건 설로 426년에 정관 존자가, 514년에 아도 화상이, 혹은 신라 말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세 가지 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둔사지』의 자료를 모았던 혜장(惠藏)은 이들 기록이 창건자의 활동 시기를 고려할 때 모두 신빙성이 없다고 보았다. 그 외 다른 기록에서 해남 대흥사의 창건에 관해 언급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응진당 옆에 있는 삼층석탑이 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신라 말에는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남 대흥사의 사찰명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대흥사’와 ‘대둔사’ 둘 다 확인된다. 조선 전기 기록에는 ‘대둔사’라 되어 있으며, 17세기 대흥사에서 간행한 불서의 간기에 ‘대흥사’라고 되어 있고, 18세기 이후에는 다시 ‘대둔사’라 하였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재차 ‘대흥사’의 사명을 사용하였다. 인근 마을에서는 순 우리말로 ‘한듬절’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불교계는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가하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법통(法統)을 중시하면서 청허계와 부휴계로 나뉘어졌다. 청허계는 임진왜란 팔도도총섭이었던 서산대사 청허 휴정(15201604)의 문도들이고, 부휴계는 병자호란 때 의승병을 이끌었던 벽암 각성(15751660)의 스승인 부휴 선수(1543~1615)의 문도였다.
『대둔사지』 「도구록추기(道具錄追記)」에서는 “1655년(효종 6)에 허백 명조(1593~1661)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으로부터 모시고 와서 이 절에 전하였다. 또 푸른 옥발우의 크고 작은 것 3좌, 당초무늬를 새긴 가죽신 2쌍, 서산대사 청허 휴정의 누른 비단 가사 1령을 한 때에 함께 가지고 왔다”라고 하였다. 이때 가지고 온 서산대사의 염주 2종, 금란가사, 그리고 3개의 옥바릿대와 수저가 현재 해남 대흥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허백 명조는 청허계 휴정의 제자인 사명 유정(1544~1610)의 문도로서 정묘호란 때 의승군 4,000여 명을 거느리고 안주성(安州城)을 지켰으며, 병자호란 때는 군량미를 모아서 제공하였던 의승장이었다. 그가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시고 와서 정착한 이후 해남 대흥사는 청허계를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18세기에 임진왜란 때 초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었던 서산대사 청허 휴정의 충의(忠義)를 기리는 표충사를 건립하였다. 해남 대흥사의 승려 계홍(戒洪)과 천묵(天黙) 등은 1788년(정조 12)에 「상언단자(上言單子)」를 조정에 올려, 해남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므로 ‘표충(表忠)’의 사액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정조가 ‘표충사’의 사액을 내리고, 그 이듬해인 1789년(정조 13) 4월에는 예관(禮官)을 보내 제향(祭享)하도록 함으로써 해남 대흥사 내에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는 표충사가 공인되었다. 지금도 해남 대흥사에서는 매년 제향을 하고 있다.
표충사가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기 전부터 표충사에는 원장(院長)을 두고 별도로 제향을 담당할 도유사(都有司)를 두고 있었다. 상월 새봉(1687~1767)의 행적에 따르면 1748년에 도유사가 되고 1750년에 원장에 임명되었으며, 해남 대흥사의 고문서에 따르면 새봉의 제자 응운 등오는 1774년에 도유사가 되고 1790년에 원장에 임명되었다.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은 표충사의 초대 원장에 1789년에 연담 유일(17201799)이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황해도 백천 호국사에 주석하고 있던 천봉 태흘(17101793)이 8월에 부임하였다. 표충사 원장의 임기는 대략 1년이었으며 거의 매년 전국에서 명망 있는 승려들이 부임하였다. 표충사 원장의 출신지는 전라도에 주석하던 승려가 많긴 하지만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황해도, 경상도 등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이는 해남 대흥사가 청허계의 종원(宗院)으로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11년(순조 11)에 해남 대흥사에 큰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때 세 전각만을 남기고 모든 건물이 불탔다고 한다. 이듬해 당시 주지로 있던 완호 윤우(1758~1826)가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1813(순조 13)년 5월에 극락전 · 용화당 · 지장전을 중건하였다. 그리고 1817(순조 17)년에는 천불전(千佛殿)을 짓고 천불(千佛)을 봉안하기 위해 경주 불석산(佛石山)에서 옥돌로 불상을 조성하였다. 천 구(軀)의 불상은 두 대의 배에 나누어 싣고 해남 대흥사로 향했는데, 부산 앞바다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으로 768구를 실은 배가 표류하여 일본 규슈[九州]에 이르렀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인 1818년(순조 18)에 해남 대흥사로 돌아와 천불전에 안치되었다. 이러한 중창 불사의 성공은 대흥사의 자부심을 더욱 고양시켰고, 『사지(寺志)』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대둔사지』 편찬은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 아암 혜장(17721811), 초의 의순(1786~1866) 등에 의해 4권 2책으로 1818년경에 편찬되었다. 권1에서는 해남 대흥사의 연혁과 12종사 · 12강사에 대해 서술하고, 권2에서는 중관 해안이 1636년에 해남 대흥사의 역사를 기술한 『죽미기(竹迷記)』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음을 비판하면서 전각의 건립 등을 실증적으로 기술하였으며, 권3에서는 서산대사의 행적을 정리하고 표충사 설립과 관련한 자료 및 경위들을 소개하였고, 권4에서는 정약용이 저술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를 싣고 있다.
『대둔사지』에서는 해남 대흥사가 청허계의 종원(宗院)임을 표방하면서 해남 대흥사 선원(禪院)의 종사와 강원(講院)의 강사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각 12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대둔사지』 편찬 이후 종사와 강사에 1명씩을 추가하여, 13종사와 13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3종사는 풍담 의심(15921665) - 취여 삼우(16221684) - 월저 도안(16381715) - 화악 문신(16291707) - 설암 추붕(16511706) - 환성 지안(16641729) - 벽하 대우(16761763) - 설봉 회정(16771738) - 상월 새봉(16871767) - 호암 체정(16871748) - 함월 해원(1691~1770) - 연담 유일 - 초의 의순이다.
13강사는 만화 원오(16941758) - 연해 광열 – 영곡 영우 – 나암 승제 – 영파 성규(17281812) - 운담 정일(17411804) - 퇴암 태관 – 벽담 행인(17211798) - 금주 복혜 – 완호 윤우 – 낭암 시연 – 아암 혜장 - 범해 각안(1820~1896)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전국 사찰을 본사와 말사로 구분하면서 1911년에 시행한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해남 대흥사가 30본산의 하나로 지정되어 44개의 사암을 관장하였다. 이는 해남 대흥사의 역사적 위상을 인정한 것으로, 조선 후기 청허계의 종원으로서 사격이 불교계에서 인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남 대흥사의 사찰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과 응진당 삼층석탑 등이 있고, 남원에는 천불전과 용화당 등이 있으며, 별원에는 표충사, 대광명전, 성보박물관 등이 있다. 그리고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북미륵암 삼층석탑, 서산대사 승탑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산내 암자로는 북미륵암, 남미륵암, 일지암, 진불암, 만일암, 상원암, 남암, 관음암, 청신암, 도솔암, 심적암 등이 있다.
해남 대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가운데 국가문화유산으로는 국보가 1점, 보물이 11점이 지정되어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6점,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2점이 지정되어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국보로는 고려 초 11세기에 조성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보물로는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가지고 있는 대흥사 삼층석탑, 고려 전기에 조성된 북미륵암 삼층석탑,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동 관음보살 좌상이 있다. 서산대사와 관련하여 서산대사 유물, 금동관음보살좌상,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이 있고, 불상으로 1612년(광해군 4) 석가여래삼불좌상, 불화로 1764년(영조 40) 영산회 괘불탱, 건축물로 1817년(순조 17)의 천불전이 있다. 이 외에 1561년(명종 16)에 장흥 지제산 천관사에서 판각한 『묘법연화경』 목판이 있고, 1173년(명종 3) 혹은 1223년(고종 20)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탑산사 동종이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서산대사 의발 일괄, 대웅보전, 대광명전, 용화당, 천불상, 관음보살도 등이 있고,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만일암지 오층석탑과 북미륵암동삼층석탑이 있다.
표충사는 1976년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