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의 높이는 700m이고, 소백산맥의 남단에서 남해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은 주봉인 가련봉(迦蓮峰, 700m)을 비롯하여, 두륜봉(頭輪峰, 630m)ㆍ고계봉(高髻峰, 638m)ㆍ노승봉(능허대 685m)ㆍ도솔봉(兜率峰, 672m)ㆍ혈망봉(穴望峰, 379m)ㆍ향로봉(香爐峰, 469m)ㆍ연화봉(蓮花峰, 613m) 등 8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룬다. 1979년 12월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두륜산은 대둔사(大芚寺)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大興寺)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두륜의 뜻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둥근머리산’, 또는 날카로운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두륜산의 동쪽 사면은 경사가 급하고 서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산세를 이룬다. 연봉은 거의 안부(鞍部: 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를 이루지 않은 채 중국 방향의 산계를 이루고 있고, 이를 해남산맥(海南山脈)ㆍ두륜산맥 또는 남령산지(南嶺山地)라 부른다.
수계는 분리된 협곡에 흐르는 소규모의 세류(細流: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를 이루지만, 장춘동계곡(長春洞溪谷)은 비교적 수량이 많으며, 우기에는 호우성 비로 인하여 급류를 이룬다. 또한 수계가 두륜산을 중심으로 방사상의 하계모양을 보인다. 보통 남동쪽 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에 비하여 서쪽 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의 규모가 더 큰 편이다.
이 일대는 식물분포구계로 볼 때 한일난대아구계(韓日暖帶亞區系)에 속해서 난대성 상록활엽수림이 발달하여 있다. 주요 삼림으로는 장춘동계곡 주변의 동백나무ㆍ후박나무를 비롯하여 북가시나무ㆍ식나무ㆍ굴참나무ㆍ곰솔ㆍ상수리나무ㆍ보리수나무 등 총 11과 837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유자ㆍ차ㆍ동백 등 난대식물이 유명하다.
특히 삼산면 구림리의 왕벚나무 두 그루는 한라산의 왕벚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고유종으로 인정되어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명칭으로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노송나무가 채종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물상은 수달·청설모 등 9과 31종, 조류는 박새ㆍ붉은머리오목눈이 등 29종, 곤충류는 138종이 조사ㆍ보고되고 있다.
두륜산 일대는 최신기의 심성암에 해당하는 미문상화강암이 넓게 분포한다. 이는 비교적 세립질의 기질에 장석의 반정을 갖는 회백색∼담갈색의 특징을 보인다.
두륜산 일대의 산수미와 사찰,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인 조건 등으로 하여 도립공원(면적 33.39㎢)으로 지정되었다. 산중에는 신라진흥왕이 어머니 소지부인(昭只夫人)을 위하여 546년(진흥왕 7)에 창건하였다는 명찰 대흥사가 있다. 절에는 각종 문헌ㆍ보물ㆍ유품 등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전(千佛殿)ㆍ표충사(表忠祠)ㆍ대광명전(大光明殿)ㆍ침계루(枕溪樓)ㆍ북미륵암(北彌勒庵) 등이 있다.
보물로는 탑산사 동종(보물, 1963년 지정)ㆍ해남 대흥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ㆍ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ㆍ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명승으로는 능허대(凌虛臺)ㆍ백운대(白雲臺)ㆍ구름다리ㆍ극락대ㆍ학사대(學射臺)ㆍ대장대(大藏臺)ㆍ금강굴ㆍ흔들바위ㆍ여의주봉 등이 있어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대흥사의 대웅전에서 700m 가량 정상 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茶苑)인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다산정약용, 추사김정희와 같은 석학, 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 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했던 곳으로, 일지암은 한국차의 성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래도 살아 숨 쉬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했던 다정(茶亭)이 있으며, 집 뒤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대롱에 연결된 돌물확(수조)에 담겨져 흐른다. 이 다천(茶泉)과 돌물확, 차를 끓이던 다조(돌부엌), 위아래의 연못과 좌선석(坐禪石) 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