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사(圓通寺)·보은사(報恩寺)라고도 한다. 863년(경문왕 3)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원통사라 하였고, 1053년(문종 7) 관월(觀月)이, 1392년(태조 1) 천은(天隱)이 중창하였다.
그 뒤 영조 때 유인(宥牣)이 퇴락한 불전과 승당을 중수하였고, 1810년(순조 10) 청화(淸和)가 중수하였으며, 1887년(고종 24) 응허(應虛)가 대법당을 중수하였다.
1928년 초여름에 이 절의 주지로 온 비구니 자현(慈賢)은 절의 중건을 발원하고 설악산에 있는 춘성(春城)을 청하여 천일관음기도를 시작하였고, 1929년 불전을 신축하는 한편, 보경(寶鏡)을 청하여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931년에 천일기도가 끝나자 그해 겨울 지리산의 보응과 함께 만일회(萬日會)를 개설하였다. 그 뒤 1933년에 칠성각을, 1936년에는 법당 일부와 대방(大房)을 중수하였고 이때 절 이름을 원통사에서 보문사로 바꾸었으며, 1938년에는 독성각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보전과 삼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관음보전만이 1929년에 건립한 것이고 나머지는 근래에 지은 건물들이다. 이 밖에 고색이 깃들인 석물들과 축대, 요사채의 주춧돌,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이 절은 관음신앙의 중심사찰이며, 특히 만일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