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의 후손 강규원(姜珪元)이 유고를 모아 편집·간행하였다. 송규헌(宋奎憲)의 서문이 있다.
4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도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5수, 서(書) 19편, 권2에 잡저로 이학통록첨록(理學通錄籤錄), 의(議) 1편, 변(辨) 1편, 송(頌) 1편, 축문 46편, 권3에 제문 28편, 애사 1편, 유사 1편, 전(傳) 1편, 묘지 4편, 권4에 행장 1편,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제문·만사·정문(呈文)·봉안문·고유문·상향축문(常享祝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주변 인물과 교유하면서 지은 것이다. 차운시·증시 등이 주류를 이루며, 여행 중의 감회를 담은 작품도 있다. 「차동문우한사유운(次同門友韓思愈韻)」에서는 동문인 한사유에게 학문의 어려움을 말하고, 여가에 학문에 대해 배움을 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내었다.
「심목멱산십오첩(尋木覓山十五疊)」 15편은 남산에 올라가 그곳의 경치와 조망을 묘사한 시이다. 물줄기를 따라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자 산이 높고 험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어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서(書)는 주로 스승과 동문 사이에 학문에 대해 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상미호김선생문목(上渼湖金先生問目)」은 스승 김원행(金元行)에게 『맹자』 등의 내용에 대해 역대 학자들이 풀이한 것을 놓고 그 득실을 따지는 글이다. 이 밖에 김이안(金履安)·강주호(姜周祜) 등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학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편지가 있다.
잡저의 「이학통록첨록」은 『이학통록』의 내용 가운데 의문 나는 부분에 대해 주석을 붙인 글이다. 의의 「별묘의(別廟議)」는 별묘가 생기게 된 유래와 그 제도의 허실에 대해 논한 글이다.
송의 「대보단송(大報壇頌)」은 1749년(영조 25) 왕명에 의해 대보단을 중수한 뒤, 왕이 신하들이 몸소 그곳에 와서 제사지내는 것을 보고 지은 글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존명사상(尊明思想)의 일단과 대보단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