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혜암(惠庵). 경기도 장단 출신이다.
장단공립보통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와 1930년 경성제일고보(京城第一高普)를 졸업하고, 같은 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35년 대학 졸업 후 진단학회에 가입, 한국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듬해 천주교에 입교한 뒤 1938년부터 해방 때까지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다.
해방 직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 1966년까지 재직하는 동안 문학부장, 교무처장, 상대학장서리, 총장서리를 역임하였다. 1966년부터 이듬해까지 대구대학장을 지냈으며, 1968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1970년부터 7년간 대학원장을 맡았다. 1974년 이래 인하대학교와 세무대학의 초빙교수로 말년까지 후학을 양성하였다.
학회 활동도 활발히 해 진단학회 이사, 한국사학회 회장, 백산학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미국무성 초빙교수로 하바드대학에 유학한 이래 국제동양학자회의, 국제역사학회의 등 구미 각지에서 개최되던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 외국 학자들과 교류하며 한국학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한편 천주교 신앙인으로서도 두드러진 족적을 남겨 1967년에는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천주교평신도회의에 참석하였고, 1968년 한국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장, 1969년 가톨릭 군종후원회(軍宗後援會) 부회장에 피선되기도 하였다.
유홍렬의 국사 연구는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조 사회사상, 이념에 대한 구명작업에서 시작,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정리에 집중되었다. 특히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는 천주교 유입과정과 배경에서부터 천주교 박해, 교세 성장과정, 그리고 초기 신앙인들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학자로서의 면모 외에 1965년 일본 북알프스 등정시 등반대장을 맡았을 정도로 전문 산악인이었던 점도 특기할 만하다. 1960년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정회원을 거쳐 1982년 원로회원에 피선되었다. 1962년 삼일문화상, 1966년 학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적 저서로는 『조선독립사상사고(朝鮮獨立思想史攷)』 · 『한국문화사(韓國文化史)』 ·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 · 『고종치하(高宗治下) 서학수난(西學受難)의 연구(硏究)』 · 『나의 인생관(人生觀)』 · 『한국사회사상사논고(韓國社會思想史論攷)』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