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술(士述). 호는 연애(燕崖). 아버지는 부제학 윤경교(尹敬敎)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목사 한수원(韓壽遠)의 딸이다. 유년시절 종조부 윤증(尹拯)에게 수학하였다.
1709년(숙종 35) 음공(蔭功)으로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에 제수된 뒤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하고, 1713년 문의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토호들의 횡포를 제거하고 투박한 풍속을 교화하여 명성이 높았다. 1715년 할아버지를 여의고 사직하였다가 뒤에 다시 익위사위수(翊衛司衛率)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를 지내고 1720년(경종 1) 함풍현감, 이어 금산군수 · 담양부사 · 장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 삼남이 소란하자 왕명으로 군병을 거느리고 승군(僧軍)을 규합하여 백양산성(白羊山城)에서 방어를 하였다.
1732년 돈녕부도정에 제수되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도정공유고(都正公遺稿)』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