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전기 시어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파평(坡平)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시어사(侍御史)
관련 사건
고영창(高永昌)의 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전기 시어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윤관(尹瓘)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115년(예종 10) 10월 시어사(侍御史)로서 요나라에 사신으로 가 천흥절(天興節)을 축하하였는데, 당시 금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길이 막힌데다가, 또 고영창(高永昌)이라는 자가 요나라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켜 동경(東京)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라에 함께 사신으로 갔었던 진봉사(進奉使) 서방(徐昉), 하정사(賀正使) 이덕윤(李德允) 등과 함께 귀국하던 도중 고영창에게 붙잡혀 억류되었다. 한편, 이들의 귀국이 늦어지자 고려에서는 비서교서랑(秘書校書郎) 정양직(鄭良稷)을 몰래 보내어 그 사정을 상세히 알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동경에 억류당하고 있는 동안 고영창의 핍박을 받아 고영창의 건국을 찬양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는데, 돌아온 뒤에 이 일을 숨기고 보고하지 않다가 발각되어 탄핵을 받아 징계당하였다. 뒤에 풀려나 남원부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해주최씨와 파평윤씨가문분석」(박용운, 『백산학보』23, 1977)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