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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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현대음악
인물
해방 이후 「예악」, 「현악 4중주 1번」, 「심청」 등을 만든 작곡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95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윤이상은 해방 이후 「예악」, 「현악 4중주 1번」, 「심청」 등을 만든 작곡가이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수학하며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 1957년까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1959년까지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윤이상은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을 시도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음악사적 지위를 얻었다.

정의
해방 이후 「예악」, 「현악 4중주 1번」, 「심청」 등을 만든 작곡가.
개설

출생지는 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지는 경상남도 통영. 1917년 9월 17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아버지 윤기현과 어머니 김순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통영에서 수학하며 성장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세부터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大阪音樂學校)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작곡을 비롯하여 음악이론, 첼로 등을 배우고 잠시 귀국한 후, 다시 1939에 일본에 건너가 이케노우치 토모지로우[池內友次郞]로부터 작곡을 공부했다. 1943년 항일지하활동에 참가한 이유로 감금을 당하기도 했으며, 해방 후 1952년까지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였다. 1949년 「고풍의상」 · 「달무리」 · 「추천」 등이 수록된 가곡집 『달무리』를 출판하였으며, 1953년에 서울로 이주하여 경희대 · 숙명여대 · 덕성여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7년까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Paris Conservatoire)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하였고, 다시 독일로 가 베를린음악대학(Berlin Hochschule)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1959년 동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네델란드의 빌토벤과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과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독일에 체류하게 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활동을 하다가 1964년 독일 포드기금회의 요청으로 베를린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1965년에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와, 1966년에 독일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에서 대편성 관현악곡 「예악」을 발표하여 국제적인 작곡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1965년에 「현악 4중주 1번」과 「피아노 3중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67년에는 이른바 ‘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을 하였으며 1969년 다시 독일로 돌아가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하노버 음악대학(Hanover Hochschule ful Musik)에서 작곡을 가르쳤고, 1971년에는 독일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1972년에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85년에 튀빙겐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그리고 1970년에 킬 문화상과 1987년에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수여 받았다.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범민족 통일음악제’의 준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남북한 합동공연을 성사시켰으며, 사망 전까지 함부르크와 베를린 아카데미 회원 및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명예회원으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유동의 꿈」 · 「나비의 미망인」 · 「요정의 사랑」 · 「심청」 등 네 편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바라」 · 「무악」 · 「예악」 · 「광주여 영원히」 등 20여 편의 관현악곡, 오보에와 첼로를 위한 「동서의 단편」 등 40여 편의 실내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의 교성곡, 동요에서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1백 50여 편을 남겼다. 1977년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을 엮은 자서전 『상처받은 용』이 독일과 서울 그리고 평양에서 각각 출판 되었다.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을 시도하여, 서양 현대 음악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에 주력을 하였으며,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음악사적 지위와 함께 ‘독일 관념철학의 전통이 벽에 부닥친 서양문명의 흐름 속에서 동양사상을 담은 음악으로 세계음악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작곡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윤이상 연구』(김용환, 한국예술연구소, 1995)
『한국음악총람』(한국음악협회, 1991)
『윤이상의 음악세계』(최성만·홍은미,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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