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논’ 혹은 ‘논의’한다는 뜻을 가지는 의는 본래 ‘의(宜 : 마땅하다, 적당하다)’라는 뜻이었다.
무엇인가 의논한다는 것은 그 의논의 궁극적인 귀결점이 그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결방법으로 모아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체는 관중(管仲)이 “헌원(軒轅)은 명대(明臺)가 있었다.”라고 논한 글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의의 대의는 본래 경전의 뜻을 풀이하고 적당한 때와 형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의는 정도(正道)에 근거하여 이치를 밝히고, 올바른 방향에서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옳은 사례를 이끌다가 오늘의 잘못을 밝히고, 근원을 따져서 말류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번거로운 논리보다 분명한 사리로 펴내야 한다. 따라서, 글은 간결한 것을 으뜸으로 쳤고 번잡한 것은 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의의 문체는 한대에 와서 뒤섞여서 어수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면 여러 신하들이 모여 의론을 한다. 그런데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워 떠들썩하게 되자 글을 지어 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학사들이 그들의 글을 보는 것이 있으면 집에서 사사로이 의론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의가 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문인에 의하여 일정한 대상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의론한 의가 많이 지어졌다. 이규보(李奎報)의 「당서불립최치원열전의(唐書不立崔致遠列傳議)」는 자신의 생각을 사사로이 의론한 것의 대표적인 것으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그는 이 글에서 최치원의 문장이나 중국에서의 활약상을 감안할 때에 『당서(唐書)』 열전에 최치원의 열전을 세웠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문장력이 뛰어난 최치원을 시기하였기 때문에 고의로 싣지 않았다고 하였다.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 사람들의 우월주의 내지는 편협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비판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