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음력 정월 보름날 군민 모두가 참여하는 대동놀이다.
유래를 기록한 문헌은 없으나 원래 마을 단위 혹은 마을 대 마을로 행하던 줄다리기가 함안현에 속했던 의령지역과 신번현이 합쳐져서 의령현으로 된 1800년경부터 고을의 행사로 규모가 커져서 큰줄댕기기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의령 큰줄댕기기 민속놀이는 1910년대까지 세시적 행사로 매년 행하다가 일제시대에 4회 놀고, 광복 이후 매년 계속되다가 농촌인구의 감소로 1972년부터 의병제의 부대행사로 격년제로 놀이를 하고 있다. 놀이의 편제는 현청(현재 군청) 앞 큰길을 기준으로 물위와 물아래로 나누어 물위가 수줄, 물아래가 암줄을 맡는데, 출생지별로 편이 갈라진다.
군내의 마을마다 짚을 모아 세 가닥의 왼 새끼로 꼬아서 만든 지름 15㎝, 길이 50∼130m 정도의 작은줄을 하나씩 가지고 정월 열흘 께가 지나면 놀이장소로 가지고 온다.
이 작은줄을 150 개 정도 나란히 놓는데, 가운데는 긴 줄을, 두 가장자리에는 짧은 줄이 가게 한다. 그것을 50㎝ 간격으로 새끼로 엮으며 누벼 고정시킨 뒤에 멍석말이하듯이 굴려서 묶으면 중간 부분은 둘레가 4m, 두 끝 부분은 3m 정도의 큰줄이 된다.
이것을 반으로 접어 큰 고를 만들고 원줄에 길이 30m의 가짓줄(벗줄)을 100 개 정도 달고, 원줄의 끝을 풀어 꽁지줄을 만든다. 줄의 모습이 흡사 풍농이 되게 비를 내리는 용과 같다.
먼저 두 편의 모가비(두령)가 큰 고 앞에 고사를 지내고 동원된 풍물패들이 풍악을 울려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수줄의 큰 고를 암줄의 큰 고에 넣어서 비녀목을 꽂고 두 편이 잡아당겨 겨룬다. 물아래편이 이기면 들녘 논에 홍수가 지지 않아서 풍농이 되고, 물위편이 이기면 가뭄이 들지 않아 대풍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의 승부 뒤에 두 편에서 각각 모가비(패의 우두머리)를 태운 빈 상여를 메고 나와서 돌고, 상대편의 골목에 가서 헛 곡소리를 내고 야유를 하다가 만나면 육탄전을 벌인다. 시합이 끝나면 줄을 끊어서 배분을 하여 큰방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둥글게 고를 만들어 큰방 · 문 위 · 부엌 · 사립문에 걸어 액을 막는다.
이처럼 큰 줄 댕기기는 고을의 태평무사, 풍농, 가정의 제액(除厄) 등 종교적 목적으로 행할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갈등해소, 화합, 단결 등의 사회적 기능을 지닌 즐거운 축제적 놀이이기도 하다.
의령큰줄땡기기는 2015년 12월 2일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기타 5건(기지시줄다리기, 영산줄다리기, 삼척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감내게줄당기기) 및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줄다리기 종목 등과 더불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