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자리하며, 태봉천과 진동천에 의해 넓게 형성된 충적지에 입지한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2006년에 사적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것으로는 묘역식 고인돌 무리 11개, 기반식 고인돌 1기, 돌널무덤 45기, 밭, 구덩이, 돌무지(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둘레에 보호물로 쌓아 둔 돌 더미) 등이다.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둥근꼴, 긴둥근꼴, 네모꼴, 긴네모꼴 등으로 다양하다. 묘역은 가장자리에 구획돌만 돌린 것, 구획돌을 설치하고 내부에 돌을 쌓은 것, 구획돌 없이 돌을 쌓은 것으로 구분된다. 또 단독으로 만들어지거나 23기가 연접 및 중복된 것도 있다.
규모가 가장 큰 A군에서는 고인돌 9기가 확인되었는데, 이 중 발굴 조사된 것은 A-1호이다. 이것은 직경 20.2m의 둥근꼴 묘역 시설에 도랑이 있고, 묘역의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높이가 높아진다. 묘역 내부는 잔자갈을 쌓은 후 그 위에 흑갈색흙을 여러 번 쌓고 다시 그 위에 돌을 깔았다. 가장자리의 구획돌은 길이 방향으로 세워서 놓았다.
묘역 중앙에서 길이 3.2m, 너비 1.5m 규모의 지상식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무덤방 내부에서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3점이 출토되었고, 도랑에서 붉은간토기가 반으로 깨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기반식 고인돌은 원래 이 일대에 8기 이상이 무리 지어 분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되고 2기만 남아 있으며, 그중 1기가 조사된 것이다. 덮개돌 주변에 많은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흩뿌려지듯이 출토된 점에서 의례 행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밭과 묘역식 고인돌 사이의 공간에 분포한다. 열을 이루거나 2~5기씩의 작은 무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무덤방은 벽면을 널돌로 쌓은 것과 깬돌로 쌓은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한편, 창원 진동리 유적의 북쪽 인근에는 1980년에 수습 조사된 무덤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과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2점, 붉은간토기 1점이 일괄로 출토되어 당시에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창원 진동리 유적이 자리한 곳은 진동만에서 함안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인 점에서 해안과 내륙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청동기시대에 경상남도 내륙과의 교류를 통해 이 유적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현재 묘역식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을 중심으로 묘역식 고인돌 7개소(26기), 기반식 고인돌 1기, 선돌 2기, 쉼터 4곳과 탐방로로 이루어진 유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