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의흥향교는 1398년(태조 7)의흥면 읍내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였다.
그 뒤 1614년(광해군 6)에 하리촌(下里村)으로 옮겼다가 1641년(인조 19)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대성전은 이때 건립된 건물인데, 1957년 ·1968년 ·1977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전의 평면은 전면툇간(前面退間)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면 반칸은 툇간으로 개방시키고, 후면은 6칸을 통간(通間)으로 처리하여 내부공간을 형성하였으며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막돌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민흘림기둥이다. 가구는 5량가의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이다.
대량(大樑) 위에는 접시받침을 놓고 포대공(包臺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게 하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장여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는 주심포(柱心包)로서 전면과 배면의 주두(柱頭 : 대접받침) 위에만 결구되어 있는데, 전면은 외이출목(外二出目)의 5포작(五包作)이며, 배면은 외일출목 3포작이다. 문얼굴은 전면에만 있는데, 전면 3칸에 각각 문틀을 내고 통판문을 달았다.
하방(下枋)에는 문을 달기 위해 둔테를 설치하였는데, 하방의 둔테는 하방재(下枋材)와 한몸으로 된 통둔테를 사용하였다. 대성전 안에 봉안하고 있는 위패는 임진왜란과 6·25 때 선암산(船巖山)의 바위굴에 옮겨두어 무사히 보존해 온 것으로, 경상북도의 향교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립 당시의 위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