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원(慶源: 지금의 인천), 초명은 이방영(李方榮), 자는 거화(去華). 문종 때의 척신(戚臣)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인 이자덕(李資德)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수사공우복야(守司空右僕射)를 지냈다.
1190년(명종 20) 5월 과거에 급제하여 첨사부(詹事府)의 녹사(錄事)와 주부(注簿)·중서정언(中書正言)·기거사인(起居舍人) 등을 지내고 평주(平州)에 출보(出補)하였으며, 이어 기거랑지제고(起居郎知制誥)에 올랐다.
평장사 왕공(王公)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도량과 풍채가 뛰어나고 청렴하여 산업(産業)을 경영하지 않았으며, 독서·시부(詩賦)·원유(遠遊)를 즐겨하였다고 한다. 1216년(고종 3) 7월에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郎) 허씨(許氏)가 지은 묘지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