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훈

정치·법제
인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남조선노동당 농민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함경남도 정평
관련 사건
정평협동조합 재건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남조선노동당 농민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개설

함경남도 정평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32년경 정평협동조합 재건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한때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6년 2월에는 정평농민조합재건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그 이후 황해남도 문산면의 조직을 담당하는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그는 ≪공산당 선언≫ 등의 책자와 기관지 ≪빈농 貧農≫ 등을 출판하였다. 같은 해 4월 메이데이 기념격문을 살포한 것이 단서가 되어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7년 3월 함경남도 함흥 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경상남도 당위원회 조직 재건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같은 해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중앙준비위원측 대의원으로 참석하여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 때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인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국농업조합총연맹 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여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또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린 ‘조선공산당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 간담회’에 중앙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같은 해 11월 남조선노동당 농민부장에 선출되었고, 그 이후 1946년 정판사(精版社) 위조지폐 사건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박헌영(朴憲永)을 거두로 한 남조선노동당에 대한 탄압을 피해 북한으로 넘어갔다.

1948년 8월황해남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해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그해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9년 6월 대남 전위기구의 하나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戰線)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