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명고(明考), 호는 기야(箕埜), 기야(箕野), 심재(心齋), 사명(四眀), 화하(華下), 희설(喜雪), 순재(淳齋), 월음(月陰), 심옹(心翁), 순옹(淳翁), 운소(韻韶), 기로(箕老), 유연(遊蓮), 연옹(蓮翁), 명고(明考), 취향(醉鄕), 심로(心老), 기옹(箕翁), 청소(聽韶) 등이다. 첨사(僉使)를 지낸 이식(李埴)의 아들이다. 몰락한 양반가 출신으로 직업화가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된다. 조선후기 사대부 화가인 심사정(沈師正)과 김기서(金箕書)는 이방운과 인척 관계였고, 조선후기 문신으로 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남공철(南公轍), 서얼출신의 문신(文臣) 성대중(成大中), 문인 최승우(崔昇羽) 등과 시(詩)·서(書)·화(畵)·금(琴)을 매개로 교유하였다.
이방운은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등을 잘 그린 다재다능한 화가로 그의 화풍은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강세황(姜世晃) 등 조선후기 문인화가들의 남종화풍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소략한 형태 묘사와 섬약하면서 재빠른 필선, 청(靑)·록(綠)·황(黃) 등의 투명한 채색을 사용하여 산뜻하고 감각적인 화면을 자아내어 개성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산수도에서는 당시의도(唐詩意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 등의 정형산수화(定型山水畵) 뿐만 아니라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또한 원사대가(元四大家)의 필법을 방(倣)하여 다양한 화풍을 구사했는데,『산수도첩』8폭 중의 제6폭「산수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근경에 몇 그루의 활엽수와 빈 정자가 있고 물 건너 원경이 횡으로 펼쳐진 전형적인 예찬(倪瓚)의 구도를 방한 것이고,「산정독서도(山亭讀書圖)」(간송미술관 소장)는 황공망(黃公望)의「천지석벽도(天池石壁圖)」의 구성과 필법을 방작한 것이다. 이외에 「동정추월도(洞庭秋月圖)」(개인 소장)는 이방운이 중국의 산수판화 『명산도(名山圖)』중의「악양도」를 임모한 것으로, 당시 중국에서 전래된 화보(畵譜)를 참조하여 자신의 화풍을 다변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방운은 진경산수화에 있어서도 개성적 화풍을 이루었는데, 충청도 지역을 유람하고 그린『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서화첩이 대표적이다.
이방운은「빈풍칠월도」와「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를 비롯한 다양한 고사인물화와 인물화, 화조화를 그렸는데, 인물 표현 또한 가벼운 필치로 소략하게 묘사하고 감각적 채색감을 드러낸 특유의 개성을 이루었다. 특히 유려한 필묵법과 산뜻한 담채를 사용한 이방운의 감각적인 화풍은 김수철(金秀哲), 김창수(金昌秀) 등 조선 말기의 이색적인 화풍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