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명 ()

이봉명의 구포유고 중 권수면
이봉명의 구포유고 중 권수면
유교
인물
조선후기 동학의 훈도를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방서(邦瑞)
구포(九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2년(숙종 8)
사망 연도
1746년(영조 22)
본관
서림(西林)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동학의 훈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동학의 훈도를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서림(西林). 자는 방서(邦瑞), 호는 구포(九苞). 아버지는 이현(李玹)이며, 어머니는 탐진최씨(耽津崔氏)로 최송수(崔松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8년(숙종 3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유봉휘(柳鳳輝)·조태구(趙泰耉) 등이 주도한 붕당싸움에 휘말려 도리어 무고를 당하여 양덕(陽德)에 유배되었다가 이듬 해에 풀려났다. 1723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듬 해에 동학(東學)의 훈도(訓導)가 되었다.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하여 언론을 구하는 명을 내리자 김일경·조태억(趙泰億) 등의 죄를 통렬히 비판하는 한편, 시폐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1731년(영조 7) 군신 간의 화합을 다지는 의도에서 임금과 신하 16명이 한자리에 모여 시를 짓는 광경을 그린 「군신제회도(君臣際會圖)」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1784년(정조 8) 예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구포유고(九苞遺稿)』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구포유고(九苞遺稿)』
『영조실록(英祖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