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정직은 간재(艮齋) 전우(田愚)와 더불어 조선 말기의 뛰어난 유학자였다.
이 집은 그의 생가로 19세기에 건립되었으며, 안채와 헛간채 2채만이 남아 있다. 초가지붕의 안채는 조촐하게 지어진 평범한 농가의 모습이다. 평면은 윗방과 큰방 그리고 부엌이 이어지며 부엌 남쪽에 머릿방이 있는 호남지방에서 드문 ㄱ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윗방 사이의 간벽 중간에는 1짝의 띠살문이 있어 두 방은 직접 통할 수 있으며, 방 앞에는 마루가 놓여져 있다. 또한 큰방에는 부엌에서도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작은 쪽문이 있다.
부엌은 다른 공간에 비해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부엌 한 구석에는 별도의 도장방을 만들었다. 부엌 앞에 덧달아 낸 머릿방은 삼면에 문을 내어 봉당에서 쉽게 출입할 수 있다.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근래까지도 안채 전면에 사랑채가 있었다.
석정은 여기에서 주로 기거하며 손님을 맞거나 후학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안채 서쪽에 있는 담장과 이어진 헛간채는 근래에 지어진 것이다. 2칸의 헛간과 방이 있으며 방 앞에는 집밖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쪽마루를 만들었다. 주위에는 토담이 둘러쳐 있어 초가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