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약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경상도경차관,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용(景容)
수암(首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98년(연산군 4)
사망 연도
1546년(명종 1)
본관
광주(廣州)
주요 관직
병조좌랑|경상도경차관|직제학
관련 사건
을사사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경상도경차관,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용(景容), 호는 수암(首巖). 이극감(李克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우(李世佑)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 진사시를 거쳐, 1535년(중종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녹사가 되고, 1538년 병조좌랑으로 탁영시(擢英試)에 을과로 급제하여 종학교수(宗學敎授)가 되었다. 1543년 선위사(宣尉使)로 일본 사신을 맞아 교역관계를 의논하였고 보덕(輔德)을 거쳐 1545년(인종 1) 전한(典翰)으로 경상도경차관(慶尙道敬差官)을 거쳐, 직제학에 올랐다.

이 해 명종이 즉위하고 윤원형(尹元衡)이 정권을 장악하자 대간의 탄핵을 받아 나주목사로 체직되었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尹任)의 일파로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의 추대에 가담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삭탈관직된 뒤 장흥에 유배되었다. 다시 경원으로 옮겨져 사사(賜死)되고 가사전토(家舍田土)가 모두 소윤일파에 분급되었다.

그 뒤 1550년 대간에 의한 신원운동(伸寃運動: 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운동)과 1568년(선조 1) 삼공(三公)에 의한 계청으로 신원되어 직첩과 가산을 되돌려 받았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인종실록(仁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전고대방(典故大方)』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