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용(景容), 호는 수암(首巖). 이극감(李克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우(李世佑)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진사시를 거쳐, 1535년(중종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녹사가 되고, 1538년 병조좌랑으로 탁영시(擢英試)에 을과로 급제하여 종학교수(宗學敎授)가 되었다. 1543년 선위사(宣尉使)로 일본 사신을 맞아 교역관계를 의논하였고 보덕(輔德)을 거쳐 1545년(인종 1) 전한(典翰)으로 경상도경차관(慶尙道敬差官)을 거쳐, 직제학에 올랐다.
이 해 명종이 즉위하고 윤원형(尹元衡)이 정권을 장악하자 대간의 탄핵을 받아 나주목사로 체직되었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尹任)의 일파로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의 추대에 가담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삭탈관직된 뒤 장흥에 유배되었다. 다시 경원으로 옮겨져 사사(賜死)되고 가사전토(家舍田土)가 모두 소윤일파에 분급되었다.
그 뒤 1550년 대간에 의한 신원운동(伸寃運動: 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운동)과 1568년(선조 1) 삼공(三公)에 의한 계청으로 신원되어 직첩과 가산을 되돌려 받았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