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만주에서 오적(五賊) 암살단인 27결사대에 가입하고, 이탁(李鐸)·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 등과 입국하여 1919년 3월 3일 고종의 국장일에 참석하는 이완용(李完用) 등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권총과 탄환이 늦게 입수되어 거사에 실패하였다.
3월 10일경 이탁으로부터 권총을 받고 기회를 엿보던 중 운동자금을 마련하고자 차병제 등과 함께 서울 무교동 박홍일(朴泓鎰) 집에 가서 자금을 요청하여 500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나 그해 5월 5일에 일본경찰에 잡혀 9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26년 출감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