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태안(泰安). 호는 현초(玄艸). 서울 출생. 1935년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에 입문하여 섬세한 사실적 채색화 기법을 수학했다. 1938년 일본에 건너가 1939년부터 1년간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大學〕에서 수학하며 섬세한 채색화 기법을 더욱 다채롭게 체득하였다.
1937년에 거리의 지게꾼을 그린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한 후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이 시기 작품들은 주로 젊은 여인상(女人像)으로, 세밀한 선묘(線描)와 사실적인 채색미, 그리고 신선한 구도에 천착한 것이었다. 1943년의 수석 특선작인 「여인-지(智) · 감(感) · 정(情)」 3부작과 다음 해의 특선작인 「인물일대(人物一對)-탐구(探究) · 화운(和韻)」은 30대 이전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 1946년부터 1948년에는 민족적 전통회화의 새로운 창조적 계승을 앞세운 청년작가 모임이던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의 동인작품전에 참가했다. 1947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학부 교수가 되어 197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작품으로는 1955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동양화부 추천작가로 출품한 「가야심추(伽倻深秋)」 이후 한국의 산수실경 주제의 사실적 내지 심의적 표현으로 일관하였다. 1965년의 신문회관화랑 개인전에서 발표된 「강산무진(江山無盡)」의 4부작(각각 8곡병풍 연작)은 대표적 역작으로 꼽힌다. 그 뒤로는 주로 설악산 사계절의 무한한 감동을 웅대한 구도와 수려한 정취로 전개시키며 독특한 화취(畵趣)의 경지를 실현시켰다.
백양회(白陽會) 창립회원(1957), 국전 초대작가(1958) · 심사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72), 대한민국예술원 회원(1979)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였고, 1980년 예술원상, 1988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