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 후진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다.1957년 이당 김은호의 제자들 모임인 후소회의 김기창ㆍ박래현ㆍ이유태ㆍ이남호ㆍ장운봉과 그 외 김영기ㆍ천경자ㆍ김정현ㆍ조중현 9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초대회장으로 김기창을 선출하고 이해 12월 화신화랑에서 창립전을 개최하였다. 다음 해인 1958년 8월 제2대 회장으로 김영기를 선출하였다. 김영기는 해마다 서울에서 열린 회원전 외에도 각 지역 순회전과 공모전을 개최하고, 해외전을 기획ㆍ실행하는 등 백양회의 활동범위를 확대하였다. 첫 순회전은 1959년 1월목포에서 열렸고 이때 허건, 성재휴ㆍ박봉수ㆍ김화경 등이 새로운 회원이 되었다. 1959년 11월에는 진주에서 제2회 지방순회전을 개최하였다.
1960년 1월 타이완국립예술원 초청으로 타이완과 홍콩에서 3차례에 걸쳐 백양회전을 개최하였고, 이 때 출품작가는 김기창ㆍ김영기ㆍ김정현ㆍ김화경ㆍ박래현ㆍ성재휴ㆍ이유태ㆍ이남호ㆍ천경자ㆍ허건이었다. 귀국 후 해외순회보고전을 6월중앙공보관에서 열어 각종 기념물과 여행 스케치, 타이완과 홍콩 작가들의 작품 등을 진열하였다. 이듬해인 1961년 1월에는 백양회 동남아 순회전으로 타이완과 도쿄, 오사카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오사카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일본 화가단체인 주조사(主潮社) 회원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고 한일미술교류를 논의하기도 했다.
신인발굴을 위한 공모전을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총 11회 실시하였고, 최고상을 수상한 심경자ㆍ이영수 등은 신입회원이 되었다. 회원 변동으로 창립회원 중 김영기ㆍ이남호ㆍ천경자ㆍ이유태ㆍ조중현 등이 탈퇴하고, 김학수ㆍ김흥종ㆍ김원ㆍ곽남배 등이 새로 참여하였다. 백양회의 회원전은 1978년까지 27회를 개최하였는데, 이후 점차 활동이 중단되었다.
백양회는 1950년대 미술계에서 한국화가들의 모임으로는 유일한 단체였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의 심사위원 구성과 운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동안 문제를 제기했던 후소회 계열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백양회를 결성했다. 따라서 백양회 회원들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전통적인 작품들과 달리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화풍을 모색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당시 서양화단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던 현대미술운동에도 호응하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고자 했다.
백양회의 타이완과 홍콩ㆍ오사카ㆍ도쿄 전시회는 한국의 민간미술단체로는 처음으로 열린 해외전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해외전시에서 얻은 경험은 한국화의 독자적인 성격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는 곧 기존의 ‘동양화’란 명칭 대신 ‘한국화’란 명칭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