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2월 ‘신시대양화전(新時代洋畵展)’을 조직했던 양화가 하세가와 사브로〔長谷川三郞〕를 중심으로 하마구치 요조〔浜口陽三〕,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 야바시 로쿠로〔矢橋六郞〕, 야마구치 가오루〔山口薰〕, 에이큐〔瑛九〕 등이 결성했고 ‘흑색양화전(黑色洋畵展)’과 ‘양화그룹 포럼(洋畵グループ フォルム)’ 의 작가들이 가세하여 발족하였다.
자유미술가협회전에는 추상과 초현실주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출품되었다. 전시종목은 유화 · 수채화 · 판화 · 콜라쥬 · 사진 등 7부문이었다. “순수예술정신과 자유로운 발언형식을 바탕으로 넓은 예술의 장을 개방하자”는 취지에서 1937년 7월 제1회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1940년 전시체제 아래 ‘자유’라는 명칭이 기피되어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미술창작가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6년 원래 이름으로 돌아갔다. 1950년 일부 회원이 탈퇴하여 ‘모던협회’를 결성하였으며, 1964년에는 36명의 회원이 탈퇴, ‘주체미술협회’를 결성하는 등 분열변천이 심했다. 1964년 남은 회원들이 ‘자유미술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매년 10월 공모전을 개최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 출품한 한국의 서양화가는 김환기와 문학수 · 유영국 · 주현이었다. 김환기는 창립전 때부터 회우로서 출품하였는데, 1941년 제5회전까지 출품하고 사퇴하였다. 유영국과 문학수는 1939년 제3회전에 회우가 된 이후 각각 1942년과 1943년까지 출품하였고 문학수는 1943년 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미술창작가협회전으로 바뀐 명칭 아래 열린 1943년 제7회전에서 이중섭이 태양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한 한국의 화가로는 이규상 · 송혜수 · 배동신 · 안기풍 · 박생광 · 조우식 등이 있었다.
자유미술가협회는 1940년 ‘기원 2600년 기념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을 서울 부민관에서 열었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한국과 일본의 작품들은 전위적인 작품들이 많았고, 당시 한국 화단에서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한국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김환기와 유영국은 기하학적 추상양식을 보여주었고, 문학수와 이중섭은 초현실주의 경향이 강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