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옥산(玉山) · 송갑(松甲). 호는 백파(白坡). 평안북도 강계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망명하여, 남만주에 설립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 강계지역의 일본군 영림창(營林廠)을 습격하였으며, 그 해 겨울에는 의용군 제2중대 군의(軍醫)로서 활약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의 북간도 교민 호적 조사원으로서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24년 이후에는 참의부(參議府)의 일원으로 부하를 거느리거나 단신으로 만주와 국내에서 일제의 영사관 · 경찰서 · 파출소 등 100여개소를 습격, 방화, 파괴하는 한편, 일본인 관민 400여명을 살상하는 격렬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혁신의회와 민족유일당 재만책진회의 비서로 활약하였다. 또한, 김일산(金一山) 등과 조선혁명군 대본영을 조직하는 등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28년 길림(吉林)에서 잡혀 신의주지방법원 ·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경성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마포감옥에서 복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