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장(季章), 호는 회와(晦窩). 이대건(李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어머니는 윤원지(尹元之)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禧嬪張氏)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숙종이 중전 민씨(閔氏)마저 폐하려 하자 전 한림으로서 전 판서 오두인(吳斗寅), 전 참판 이세화(李世華), 전 응교 박태보(朴泰輔) 등의 재야 서인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강화유수로서 치적을 남겨 사당이 세워졌다. 특히, 강화부 방비를 위한 진(鎭)의 설치에 관한 이인엽의 견해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아 후대까지 종종 인용되었는데, 정조대에 이르러 실제 시행에 옮겨지기도 하였다. 벼슬이 행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