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경인(敬人). 이후원(李厚原)의 8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영흥부사 이명연(李明淵)이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였는데, 8세 때에 임금이 거둥하는 행차를 구경하다가 정조로부터 그 몸가짐을 칭찬받기도 하였다.
오희상(吳熙常)을 좇아 수업하였으며, 1774년(영조 50) 선공감역에 제수된 뒤, 의금부도사·장악원주부·서부영(西部令) 등의 관직을 거치고 삼가현감으로 보외되었다. 소송사건에 관련된 업무에 능하여 여러 차례 의혹의 옥사사건을 현명하게 밝혔으며, 1778년(정조 2) 가평군수로 승진하였으나, 감사와의 불화로 파직되고 문의에 유배, 그뒤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