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공택(公宅), 호는 만문재(晩聞齋)·일성(日省)·신야(新野). 경상도 영주 출신. 이해(李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관섭(李觀燮)이다.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여 정조의 친명으로 성균관에 거재(居齋)하기도 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응제대책(應製對策)으로 인하여 온릉참봉(溫陵參奉)에 발탁되었고, 벼슬이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에 이르렀다. 서연(書筵)에도 입시하여 진강하였는데, 동료들로부터 진강관(眞講官)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만년까지 책을 놓지 않았는데, 특히 『심경』·『근사록』을 아꼈다 한다. 저서로는 『신야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