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때 이홍윤(李洪胤)의 옥사에 연루되어 화를 입은 사람이다. 1549년(명종 4) 영월에서 귀양살이하던 이홍남(李洪男)이, 아우 이홍윤이 국왕의 치세를 연산군 말기에 비기면서 반정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였다는 내용의 편지를 처남인 원호변(元虎變), 동서인 정유길(鄭惟吉)에게 보낸 것이 빌미가 되어 옥사가 벌어졌다.
이것이 역모사건으로 규정되면서 충주 지방의 인사들이 거의 연루되다시피 하였는데, 이 때 이홍윤의 서제(庶弟)인 이후정(李後丁)의 증언으로 다수가 화를 입었다. 이인정과 이후정, 그리고 역시 이 때 화를 입은 이무정(李戊丁) 등 세 사람은 형제였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모두 국문을 받고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