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고(汝皐). 이의진(李宜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보혁(李普赫)이다.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이며, 어머니는 정후일(鄭厚一)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통덕랑(通德郎)이 되었다가 1757년(영조 33)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한 뒤, 1760년 암행어사로 호서 지방을 검찰(檢察)하였다.
이어 홍문관교리로서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문학(文學) 등을 겸임하였고, 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을 거쳐 대사간에 올랐다.
이어 승지를 역임하였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대사헌에 승배(陞拜)되었다. 1781년(정조 5) 병조판서로 승차(陞次)한 뒤 인릉군(仁陵君)에 봉해졌으며, 1787년 우의정을 거쳐 곧 좌의정이 되었고, 1789년 영의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