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달(士達). 아버지는 현령 이원근(李元謹)이며, 어머니는 현감 정희경(鄭熙慶)의 딸이다. 재종숙인감역(監役) 인상(麟祥)에게 입양되었다. 9세부터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 실패, 다시는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그 뒤 현량으로 천거, 내시교관이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다시 경안도찰방(慶安道察訪)에 제수되자 관직에 나갔다. 6품에 오른 뒤 내직을 거쳐 고산현감·흠곡현령·평창군수·순천군수 등을 거쳐 온양군수로 아산현령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서호(西湖)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고, 이덕형(李德馨)·이정구(李廷龜) 등과 교유하였다. 1614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이 피살되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가족을 데리고 광릉(廣陵) 선롱(先垅: 조상의 묘소) 아래 숨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