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심(士深), 호는 일선(一蟬). 이수번(李秀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사미(李思微)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규항(李奎恒)이며, 어머니는 권변(權忭)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생원시에 합격, 1773년 영희전참봉(永禧殿參奉)이 되었다.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관직을 거쳐 1775년 검열·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784년(정조 8) 황해도도사, 1788년 홍문관부교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그 해 흉년으로 많은 유민이 발생하자 황정(荒政: 구황의 정책)을 소홀히 하였다는 죄상으로 파직되어 하동부로 귀양갔다. 곧 석방되어 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 대사헌, 이듬해 대사간으로 적극적인 언로정치를 실행하였다. 1793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강화부유수로 부임하였으나 임지에서 죽었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특히 예론(禮論)에 정통하였고 시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일선와고(一蟬窩稿)』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