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방의(芳毅). 태조의 셋째아들이고,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의 소생으로, 이방과(李芳果: 뒤의 정종)의 아우이며,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의 형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益安君)에 봉해지고, 1398년(태조 7) 12월에 이방원·이방간(李芳幹)과 더불어 개국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어 200결의 공신전을 받았다.
1398년 8월에 정도전(鄭道傳)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방원을 보좌하여 이해 9월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봉해지고 200결의 공신전을 이미 받았으며, 그 달에 익안공으로서 중군절제사(中軍節制使)가 되었다.
이 때 이방간은 좌군절제사, 이방과는 우군절제사가 되어 정도전일파가 장악했던 병군을 회수하여 세 왕자가 병권을 분장하였다.
1399년(정종 1)에 종친과 훈신(勳臣)으로 하여금 제도(諸道)의 군사를 나누어 관장하게 하였는데, 이방원은 강원도와 동북면을, 그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이방간은 풍해도와 서북면의 병권을 각각 관장하였다.
1400년 2월에 방간·박포(朴苞)의 모반사건이 일어났을 때 병으로 집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이방간의 모반을 개탄하면서 절제사직을 사임하여 이방원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태종이 즉위하자 대군이 되었으며, 그 뒤 병으로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이성계(李成桂)의 왕자 가운데에서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時事)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