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예학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의 4대손인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 10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의동(義洞) 별궁(別宮)에 들어갔고, 다음해 3월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1676년 정식으로 왕비의 책명(冊命)을 받았다.
1680년 10월에 천연두(天然痘, 痘患)의 증세가 보였는데, 이 때 숙종도 천연두를 겪지 않아서 약방도제조(藥房都提調)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건의에 의하여 왕은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移御)하였다. 왕비는 발병 8일 만에 경덕궁(慶德宮)에서 죽었다.
경덕궁 영소전(永昭殿)에 위패가 모셔졌고, 능은 고양에 있는 익릉(翼陵)이다. 소생으로 두 공주가 있었으나 일찍 죽었다.
1713년 존호(尊號) 광렬(光烈)이 올려졌고, 1722년(경종 2) 휘호(徽號) 효장명현(孝莊明顯)이, 1753년(영조 29) 존호 선목(宣穆)이, 1776년 존호 혜성(惠聖)이 각각 올려졌다.
시호는 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인경왕후(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仁敬王后)이고, 능호는 익릉(翼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西五陵) 묘역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