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자 ()

목차
관련 정보
선종영가집(언해) 권하
선종영가집(언해) 권하
출판
개념
조선전기 제10대 연산군 때 내탕금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목활자.
목차
정의
조선전기 제10대 연산군 때 내탕금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목활자.
내용

1495년(연산군 1)에서 1496년 사이에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대비(貞顯王大妃)와 덕종의 비인 인수대왕대비(仁粹大王大妃)가 원각사(圓覺寺)에서 불경을 찍어내기 위하여 내탕금으로 만든 것이다. ‘인경목활자’라 하기도 한다.

이 인경자의 제작은 정현대비가 죽은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95년 원각사에서 국역의 ≪법화경 法華經≫·≪능엄경 楞嚴經≫·≪금강경육조해 金剛經六祖解≫·≪반야심경 般若心經≫·≪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석보상절 釋譜詳節≫ 등과 한역의 ≪금강경오가해 金剛經五家解≫·≪육경합부 六經合部≫ 등을 찍어내고, 그 인쇄한 불경 전체에 붙일 발문을 학조(學祖)에게 쓰게 하였는데, 그 발문을 찍어내기 위하여 활자 제작이 시작되었다.

비록 한정된 한자의 목활자이지만 글자가 해정하고 새김이 정교하며 먹색이 검어 참으로 선명하고 아름답다. 왕대비와 대왕대비는 불경을 본격적으로 인출하기 위하여 임금의 내탕금을 얻어 한자목활자에 이어 한글목활자를 계속 만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일반 중생에게 불법을 널리 펴고, 또 척불의 시류에 휩쓸려 명상(名相)에만 집착하고 있는 세속인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 데 필요한 불경부터 인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인출된 불경으로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왕대비의 주재 아래 반시(頒施)된 한문본 ≪천지명양수륙잡문 天地冥陽水陸雜文≫, 그리고 대왕대비의 주재 아래 반시된 국역본 ≪육조대사법보단경 六祖大師法寶壇經≫ 300부와 ≪진언권공 眞言勸供≫ 400부이다.

이 목활자의 제작 및 인경사업은 대비들이 주재하였고, 그 비용을 내탕금으로 충당하여 정성껏 만들었기 때문에 활자의 새김이 참으로 정교하다.

자본(字本)은 누구의 글씨인지, 또는 어떤 책의 글자에 근거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글자체가 단정하고 우아하다. 이들 인본 가운데 특히 ≪육조대사법보단경≫과 ≪진언권공≫의 국역본은 우리 나라의 고어 변천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두 책에 이르러 한자의 주음법(注音法)이 정제(整齊) 또는 간소화되었고, 15세기 당시의 우리 나라 실제 한자음이 이 책들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목활자에 의한 불경인쇄는 1496년 4월에 연산군이 흥유억불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그 동안 인경사업을 주관해 오던 학조가 유신들의 배척을 받아 인경 도중에 손을 떼자 마침내 중단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인경사업이 도중에 중단되어 인본의 종류가 적고, 또한 전래본도 아주 드물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인쇄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활자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한국의 고활자』(손보기, 한국도서관학연구회, 1971)
『한국전적인쇄사(韓國典籍印刷史)』(천혜봉, 범우사, 1990)
『한국서지학연구(韓國書誌學硏究)』(천혜봉, 고산천혜봉교수정년기념선집간행위원회(古山千惠鳳敎授定年紀念選集刊行委員會), 1991)
「연산조(燕山朝)의 ‘인경목활자(印經木活字)’본에 대하여」(천혜봉, 『조명기박사화갑기념불교사학논총』 1965)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천혜봉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