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 24대 동성왕 때 지어진 누각이다. 임류각은 금강 변의 산기슭에 자리하였다고 추정하거나, 공산 남쪽의 산성동 · 중동 · 옥룡동의 사면에 자리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공산성 내의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결정적 근거라고 생각되는 ‘류(流)’ 자가 새겨진 기와가 다른 곳에서도 출토되어 확실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왕궁을 공산성으로 본다면 동쪽 봉우리 방면에 자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22년조에 의하면 “봄에 임류각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丈〕이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들이 반대하며 상소하였으나 대답하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궁궐 문을 닫아 버렸다.”라고 하여 500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해 5월 좌우의 측근과 더불어 임류각에서 밤이 새도록 연회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동성왕은 같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21년 여름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고, 도적이 많이 생겼다.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제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라고 하여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어 연회를 즐기는 왕으로 기술하였다. 이를 통하여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임류각은 동성왕 말년 실정의 대표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임류각은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 유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원지 유적은 한성 시기 진사왕 때 궁실 수축 기사에도 나타나고, 사비 시기 궁남지의 조성에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