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용여(用汝), 호는 돈와(遯窩). 임선백(任善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중(任重)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임상원(任相元)이며, 어머니는 정식(鄭植)의 딸이다.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설서가 되었고, 정언을 거쳐 1699년 이만성(李晩成) 등 8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敎理)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그 뒤 수찬·교리·정언·부수찬 등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03년 당쟁의 폐단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시 향리에 은거하였다. 곧 재기용되어 지평이 되었고, 1707년 사직으로 문신중시(文臣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이조좌랑 겸 문학·교리·수찬 등을 역임하다가 1709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였다. 다음해에 통신부사가 되어 일본에 파견되었으나 대마도주의 간계에 속아 투옥, 파직되었다.
1720년에 재기용되어 승지에 올랐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음률(音律)·상수(象數)·병법(兵法)·지리 등에도 해박하였다. 저서로 『돈와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