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길보(吉甫). 임숙영(任叔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양(任量)이고, 아버지는 참판 임윤원(任胤元)이며, 어머니는 권완(權俒)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음(門蔭)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25년(영조 1) 삼가현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 문필에 관한 직무를 맡은 관직)이 되었고, 1727년(영조 3) 조현명(趙顯命) 등 20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그 뒤 부수찬·수찬·헌납·부교리·사간·응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고, 1734년(영조 영조 10) 대사간이 되어 훈련도감 및 전라도지방의 바르지 못한 정책을 바로잡을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해 승지에 임명되어 그 뒤 8년간이나 계속 이 직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대사간·형조참판을 잠시 역임하기도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고금의 필법의 장점을 취하여 독특한 서체를 구사하여 당대에 명필로 이름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