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천(醴泉)이다. 1104년(숙종 9) 여진족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우야소[烏雅束]가 정주성에 침입하자, 내시로 있으면서 이의 정벌을 위하여 출병할 것을 주장하였다.
직사관 이영(李永)이 이에 반대하였으나, 국왕의 명령으로 임간(林幹)이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가 패배하였다. 이듬해 오연총(吳延寵)이 동계행영병마사(東界行營兵馬使)로 나갈 때, 별감으로 임명되어 수행하였다.
1107년(예종 2) 우부승선으로 동북지역에 파견되어 여러 성을 순시하였고, 이어서 좌부승선 예부낭중이 되었다. 이해 윤관(尹瓘)이 여진정벌을 단행하자 도지병마영할사(都知兵馬鈴轄使)가 되어 출동하여 승리를 거두고 그곳에 9성을 설치하였는데, 그 기쁨을 담은 기(記)를 지었다.
그 내용을 보면, 오랜 숙원인 여진족을 물리치고 그곳에 성지(城池)를 설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들어가 살게 하였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1109년 동계행영병마별감에 제수되었고, 같은해 여진족에게 9성을 돌려주게 되자 윤관·오연총 등과 함께 탄핵을 받았다.
1111년 한림시강학사가 되고, 다음 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오연총과 더불어 과거시험을 관장하였으며, 이어 예부시랑 우간의대부(禮部侍郎右諫議大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