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년(신라 경덕왕 16)에서 1895년(고종 32)까지 충청북도 음성지역에 설치되었던 음성현의 행정 구역.
신라의 영토가 된 뒤 경덕왕이 음성현으로 바꾸어 흑양군(黑壤郡 : 지금의 진천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잉홀의 뜻은 큰 성(城)과 관계가 있다.
『고려사』권10 「지리지」에 “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잉홀현(仍忽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음성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흑양군(黑壤郡)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고려에서는 그대로 따르다 감무(監務)를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같은 내용에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으로 바꾸었다”고 추가,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음죽과 충청도의 괴산을 잇는 산간분지로서 큰 마을을 이루었다.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음성현은 토지가 척박하고 바람이 차며, 밤·소두·녹두·뽕·종이 등이 생산되고 있고 관내에는 감원역과 용안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530년(중종 25)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음성현의 객관 동쪽에는 의송정(倚松亭)이 있고 현의 동쪽 1리에는 향교, 서쪽 1리에는 감원역, 남쪽 9리에는 장혜원, 서쪽 19리에는 장신원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향교말과 감원역에서 유래한 역말 등이 남아 있고, 음성향교가 아직 현존하고 있지만 음성현 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거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