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489m. 절령역(岊嶺驛)이 있어 일명 절령이라고도 한다. 언진산맥 말단의 연암(蓮巖, 590m)과 자비산과의 안부에 위치한다.
황주준평원(黃州準平原)과 재령평야에 쌓인 보명산(保命山, 584m)·가마산(可馬山, 481m)·정방산(正方山, 480m) 등의 비교적 낮은 산지를 횡단하는 고개로 남쪽사면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흥강의 상류계곡으로 통하고, 북쪽사면은 대동강의 지류인 황주천(黃州川)의 상류계곡으로 연결된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개성에서 평양을 잇는 행정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고려의 역신 최탄(崔坦)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 54성과 자비령 이북의 6성을 합하여 모두 60여성을 가지고 몽고에 귀순하여 이 곳을 동녕부(東寧府)라 칭함으로써 1270년(원종 11)부터 1290년(충렬왕 16)까지 자비령이 여·원의 국경이 되었다.
또, 1361년(공민왕 10) 11월에는 홍건적이 쳐들어와 이 고개에 방책을 쌓고 방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명나라 사신들이 황주 남쪽 10m 지점에 있는 극성진(棘城鎭)의 극성로(棘城路)를 통하여 내왕하므로 이 고개의 영로(嶺路)를 폐하고 역을 서쪽의 봉산 북쪽 6㎞ 지점에 있는 동산역(洞山驛)과 봉산 동쪽 16㎞ 지점에 있는 검수역(劒水驛)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