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군수(君秀), 호는 수은(睡隱). 조선 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으로, 당대 대표적 화원 가문이던 인동 장씨 출신이다. 조부 장충명(張忠明), 부친 장자욱(張子旭), 동생 장계만(張繼萬)·장덕만(張德萬), 아들 장사주(張師周)·장경주(張敬周) 등 일가가 모두 화원이었다. 주요 화원 가문이던 양천 허씨 집안의 허석(許晳)의 사위가 되었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조지별제(造紙別提)를 지냈다.
장득만(張得萬)은 화원으로서 여러 궁중 행사의 도화 업무에 참여하였다. 1701년 인현왕후 국장도감(仁顯王后國葬都監), 1718년 경종과 선의왕후의 가례도감[景宗宣懿王后嘉禮都監], 1724년 경종 혼전도감(景宗魂殿都監), 1730년 선의왕후 혼전도감(宣懿王后魂殿都監), 1731년 인조 장릉 천릉도감(仁祖長陵遷陵都監)에서 일하였다. 또한 어진(御眞)과 공신 초상화 제작에 참여하였는데, 1713년 숙종의 어진 도사와 1735년 세조 어진 모사, 1748년 영조의 숙종 어진 모사에 동참 화사로 참여하였고, 1729년에는 분무녹훈도감(奮武錄勳都監)에서 공신 화상을 그린 사실이 관련 의궤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주요 행사를 기념한 계첩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는데, 1719년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한 『기사계첩(耆社契帖)』과 1744년 영조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한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의 제작에 임하였고, 이 외에 명시문(名詩文)과 고사(故事)를 주제로 한 서화 합벽첩인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과 『예원합진첩(藝苑合珍帖)』의 제작에 양기성(梁箕星)·한후방(韓後邦)·한후량(韓後良)·장계만(張繼萬)·진재해(秦再奚) 등 화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어진 제작 때에는 특히 설채(設彩)에 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유존 작품 중 『만고기관첩』의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 「촉도난도(蜀道難圖)」에서도 능숙한 필치와 갈색조의 세련된 채색 감각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주요 화원 가문이라는 집안 배경과 우수한 실력을 바탕으로 주요 회사(繪事)에 두루 참여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