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공설운동장 부지 내에 포함되어 1989년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하여, 고인돌[支石墓] 5기와 그 밖에 삼국시대 돌방무덤[石室墳] 5기, 미륵불(彌勒佛) 1기를 확인하였다. 수인산이 남동으로 뻗어내려 돌출된 거마등의 기슭으로 고인돌은 산기슭에 형성된 고개 정상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고, 돌방무덤과 석불(石佛)은 산기슭에 분포되어 있다. 유적의 동쪽과 서쪽에는 탐진강 본류와 금강천이 흐르며 이들은 유적의 남쪽에서 합류하고 있다.
석실의 장축방향 은 남-북을 주축으로 산 경사면을 따라 축조되었고, 머리방향은 인골이 출토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산정상부쪽인 북침(北枕)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석실구조는 맞조림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제3호분에서는 동쪽으로 치우친 널길이 발견되었다. 벽석은 크기의 차이가 있으나 주로 판상형 할석(板狀形割石)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바닥석은 할석, 천석, 할석과 천석 등 다양하다. 합장(合葬)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바닥의 규모와 시설로 보아 제2호분은 단장(單葬), 제3호분은 합장으로 보이며 나머지는 알 수 없었다.
고인돌은 입지조건과 덮개돌[上石]의 형태로 보아 외관상 고인돌로 판단되었으나 조사결과 하부구조(下部構造)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고인돌로 볼 수 없지만 주변에서 홈자귀[有溝石斧], 돌화살촉[石鏃], 홈돌[凹石], 석재(石材)편 등 이 시기와 관련되는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채석장(採石場)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거마등 자체가 채석된 덮개돌과 동일한 응회암(凝灰岩) 계통의 암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변에 분포된 돌들도 이와 동일한 석재로 축조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철정(鐵釘)·과대금구편(銙帶金具片)·구슬 등이 있는데, 제3호분에서 출토된 과대편은 역심엽형과(逆心葉形銙)로서 신라·가야 지역의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형식과 유사하다. 또한, 주변에서 분청사기 등이 출토되었으나 이는 교란되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돌방무덤의 축조시기는 돌방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초반 이후 7세기 전반 사이로 추정되었다. 그밖에 고려시대의 석불입상 1구는 머리부분이 모두 파괴되었으나, 수인(手印)이 지권인(智拳印)으로 흔히 보기 어려운 비로자나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