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총국은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의 좌절로 중단되었던 우편사업이 재개되면서 종래 전신만을 취급하였던 전보총국이 확대개편된 것이다.
1893년 8월 17일 고종은 “전신을 설치하여 업무를 개시한 지 이미 오래다. 우신 또한 설치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신과 우신을 합함에 전보총국을 전우총국으로 개편한다.”라는 전교를 내리고 전우총국의 장인 관리전우사무에 전보총국 총판을 역임한 바 있는 조병직(趙秉稷)을 임명하여 그 관할하에 우신총국과 전보총국을 두게 하였다.
우신총국 밑에는 다시 국내우편을 담당하는 내체우신과 국제우편을 담당하는 외체우신을 두어 업무를 분장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정부는 주한미국공사 알렌(Allen,H.N.)에게 한미우편협정의 체결을 요청하는 공안을 보내 이번 조치가 국내에 침투한 청국의 해관우편을 철폐시키기 위한 것이고, 일본 및 청국측의 방해공작을 예상하여 비밀리에 신속히 체결하자는 우리측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미국과 외교경로를 통하여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태극기가 주도안이 된 태극우표를 미국의 앤드류 버그레이엄 조폐회사에 주문하고 만국우편연합(UPU)의 가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동학란의 봉기와 뒤이은 청일전쟁의 발발로 우리나라의 체신사업은 사실상 전면적인 중단상태에 빠지고 말았으며 전우총국 또한 1894년 6월 28일 공무아문의 전신국과 역체국으로 분리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