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진 ()

유교
인물
개항기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전공으로 해남군수를 역임한 관료.
이칭
태완(台完)
난파(蘭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1년(철종 2)
사망 연도
1896년(고종 33)
본관
나주(羅州)
출생지
전라도 나주
주요 관직
해남군수
정의
개항기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전공으로 해남군수를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태완(台完), 호는 난파(蘭坡). 아버지는 참봉 정찬기(鄭讚基)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최사륜(崔師崙)의 딸이다. 외모가 웅위(雄偉)하고 지기(志氣)가 원대하였다. 오계수(吳繼洙)에게 사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3년(고종 30)에 큰 흉년이 드니 가산을 털어 빈민을 구제하였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동학도들이 나주로 쳐들어오니 목사 민종렬(閔種烈)의 천거로 도통장(都統將)이 되어 여덟 달 동안을 방어하면서 전후 여섯 번이나 승전을 거두어 나주를 끝내 방어하였다.

그 공으로 난이 평정된 후 해남(海南) 군수에 특제되었다. 1895년 8월 20일에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정석진은 벼슬을 버리고 기우만(奇宇萬)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기도 전에 그 다음해인 1896년 3월 11일 서울에서 내려온 관군(대장은 金炳旭)에게 패하여 생포되었다가 김병욱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의 많은 인사들이 이를 원통히 여겨 시와 문으로 애도하였다. 그 다음 해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풀어 버림)되었다. 저서로는 『난파집(蘭坡集)』 1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난파집(蘭坡集)』
집필자
이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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