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2.55m. 이 탑은 본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의 정토사 터에 있었던 것으로, 1915년에 탑비(塔碑)와 함께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이 탑은 전체적인 구성에서 신라시대 이래의 석조 부도(石造浮屠) 양식의 전형인 팔각원당(八角圓堂)의 기본형을 잃지 않으면서 일부에 새로운 창안을 가미한 작품이다.
8각 지대석(地臺石) 위에 복판연화문(複瓣蓮華文)이 장식된 복련석을 얹었고, 8각 중대석 각 면에는 고려시대 특유의 네모난 안상(眼象) 속에 운룡문(雲龍文)이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상대석(上臺石)은 얇고 원형에 가까운데, 밑에는 앙련(仰蓮)을 조각하였고 연판 안은 다시 화문을 장식하였다.
상대석 상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8각으로 낮은 1단이 있고 중앙에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은 이 부도탑에서 가장 특징 있는 부분으로서 원구형을 이루고 있다. 표면에는 중앙에서 2조의 양각선을 가로로 두르고 다시 상하를 十자로 맺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모양을 두어 단조로운 표면을 장식하였다.
옥개석에는 별다른 조식은 없으나, 8각 귀퉁이에 귀꽃이 있어 주목된다. 즉,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전각(轉角)마다 높직한 귀꽃을 달았는데 그 모양은 마치 큼직한 수막새와도 같다. 옥개석 하면은 삿갓모양으로 깊숙이 패어서 탑신 위에 놓인 원통형 석재 위에 얹혔고, 그 주위로 활달한 비천(飛天)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옥개석 정상의 연화좌 위에 형성되었을 것인데 현재는 전혀 부재를 남기지 않고 있다. 탑신이 원구형이 된 것은 다층석탑의 복발형(覆鉢形)에서 얻은 착상인지도 모르지만 기발한 의장이 분명하며, 넓게 퍼진 기단부에서는 여유있는 안정감을 주고 있다.
한편, 특이한 석재에서 오는 질감도 있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드러운 감을 준다. 건립 연대는 바로 옆에 서 있는 탑비의 비문에 따르면 홍법국사가 입적한 해가 고려 현종 8년(1017)이므로 상한 연대를 이때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