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발견되었으나 봉분은 이미 파괴되어 대부분이 없어지고 발굴 전에는 길이 17.5m, 너비 7.5m, 높이 2m의 길다란 타원형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중앙부는 이미 도굴되어 움푹 파여 있었고, 장축은 동북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 유적은 환석으로 두른 삼국시대 고구려계 원형 적석 위에 또 다시 통일신라시대 고분이 축조되어 있는 유적이었다.
이 고분은 상부구조가 완전히 파괴되고 또 묘의 덧널이 노출되는 상태로까지 도굴을 당해 부장품이나 다른 유물의 발견은 전혀 없었다.
다만, 여러 시대에 걸친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의 토기 중 고구려계의 백색계 토기편들이 많이 발견되고, 그 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문양이 있는 청회색 토기편들이 채집되어 이 고분은 원래 고구려계 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형 적석파괴분 위에 새로이 설치된 통일 신라고분은 두께 20∼25㎝ 크기의 하천석과 산석 등을 사용해 거의 원형에 가까운 작은 환석을 이룬 후, 상부를 50㎝ 내외 길이에 두께 15㎝의 단단한 판석으로 덮어 세워 놓은 것이다. 이 안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완형 뼈단지(골호) 1점이 발견되었다.
결국, 뼈단지를 매장하기 위해 먼저 만들었던 삼국시대 분묘의 일부를 다시 파서 적석 환석을 쌓고, 그 속에 뼈단지를 안치한 뒤 판석을 위에 세워 봉분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통일신라 고분도 도굴로 인해 상당히 파괴되었으나 다행히도 완전히 도굴되지 않아서 회청색 뼈단지가 원 위치에서 발견되었다.
뼈단지는 전체 높이 11.8㎝, 뚜껑 높이 4.5㎝, 뚜껑 지름 16.45㎝, 아가리 지름 15.12㎝, 몸체 높이 8.53㎝, 다리 지름 8.62㎝, 다리 높이 1.3㎝이다. 이 발형 뼈단지에는 기하학문양, 돌대문, 수직 파상문, 주화형무늬[珠花形文]가 시문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