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덕주산성 ( )

건축
유적
국가유산
조선시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축조된 대규모 성곽. 충청북도 기념물.
유적
건립 시기
조선
관련 인물
덕주공주
둘레
약 15km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638 산 46-1, 123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83년 3월 30일 지정)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638 산 46-1,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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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제천 덕주산성(堤川 德周山城)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산성이다. 이 산성은 덕주골과 송계계곡을 4겹의 성벽으로 둘러싼 대규모 산성으로 남한강 일대와 영남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관장할 수 있는 곳에 들어서 있다. 산성의 총 둘레는 약 15km로, 상성 · 중성 · 하성 · 외곽성 총 4겹으로 조성되었다. 여장 및 남문 시설 등이 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축성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정의
조선시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축조된 대규모 성곽. 충청북도 기념물.
건립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 덕주사(德周寺)는 월악산 아래에 있다. 전해오는 말로는 덕주부인(德周夫人)이 이 절을 세웠으므로 그렇게 이름했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덕주부인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딸이자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라고 한다. 제천 덕주산성(堤川 德周山城)의 명칭이 인근의 덕주사 및 덕주공주의 이름과 관련된 것은 덕주사 주위에 성을 쌓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천 덕주산성과 관련하여 “주의 동쪽으로 45리에 있고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32,670자이고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폐기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산성의 둘레를 포백척(布帛尺)으로 환산하면 15,266.69m로 약 15㎞가 넘는 규모가 된다.

각종 문헌들의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천 덕주산성은 조선 중종 때 내성(內城)이 축조(築造)되었다. 선조 29년(1596)에는 정유재란을 대비하여 이시발(李時發)이 성을 수축(修築)하고 문루(門樓)를 세웠다. 숙종 35년36년(17091710)에는 덕주산성을 왕의 피난처로 삼기 위해 보수하려고 했다가 계획이 중단되었으며, 고종 20년(1882)에 다시 수축을 논의했다가 중단된 바 있다. 근래에는 보수 · 복원 계획에 따라 북문 · 남문 · 동문 등의 홍예문(虹霓門)과 남문 · 북문의 문루가 보수 · 복원되었고, 남문의 동쪽 성벽 및 동문의 남쪽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형태와 특징

제천 덕주산성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산성으로, 덕주골과 송계계곡(松界溪谷)을 4겹의 성벽으로 둘러싼 대규모 산성이다.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성벽의 총 둘레는 약 15km가 넘는데, 월악산 남쪽 기슭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인 덕주골에 여러 겹의 성벽이 조성되어 있다. 제천 덕주산성의 남북 관문은 송계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남한강-송계계곡-하늘재-문경, 남한강-송계계곡-지릅재-연풍, 남한강-송계계곡-계립령-문경 사이의 교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제천 덕주산성은 상성, 중성, 하성, 외곽성 총 4겹으로 축조되었다. 계곡의 가장 상류인 덕주사터를 포함해 계곡을 막은 상성, 덕주골의 아래부터 덕주사까지를 에워싼 중성, 보다 넓게 덕주골을 에워싼 하성인 차단성(遮斷城), 다시 송계계곡을 남문과 북문으로 막아 외곽을 이룬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중성이 내성의 역할을 하고, 남북의 문으로 에워싼 외곽성이 외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성과 하성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제천 덕주산성에 대한 조사와 함께 각 성곽의 기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제천 덕주산성의 성벽은 내외 협축의 석축 성벽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지형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벼랑이 있는 험한 곳에는 천연의 암벽이 성벽의 구실을 하도록 지형을 그대로 살렸으며, 능선부와 계곡부를 가로지르는 곳은 석축의 성벽을 인공적으로 축조하였다. 한편 중성의 북쪽 구간에는 여장(女牆, 女墻)이 잘 남아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성벽의 형태를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또한 남문의 경우 서쪽에 특수한 등성 계단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그 내부에 연못이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의의 및 평가

제천 덕주산성은 남한강과 영남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성곽이다. 특히 4중 구조로 이루어진 독특한 성곽 축조 양식과 약 15km에 달하는 규모가 특징적이다. 또한 성문의 형태가 완벽하게 남아 있고, 주변 시설을 갖춘 관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제천 덕주산성은 조선시대 축성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유구(遺構)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신증동국여지승람』
『호서승람(湖西勝覽)』
『증보문헌비고』

단행본

충주공업전문대학박물관, 『덕주사 마애불과 덕주산성 지표조사보고서』(1992)
충청북도, 『덕주산성』(2008)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성곽봉수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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