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성과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건지산성(巾之山城)이 군의 서쪽 1리에 있다. 2분이 토성(土城)이요, 1분이 석성(石城)인데, 험조하다. 둘레가 5천 3백 77보이며, 안에 샘 5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군창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훼페(今毁廢)’라 하여 중종 대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보여 준다. 그 후 『충청도읍지』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도 ‘금폐지(今廢址)’라고 기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지산성에 대한 조사는 1999년 동벽과 서벽, 동문지와 수구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선 후기 건물지 1동이 확인된 바 있다.
건지산성은 한산의 진산인 건지산 정상부에서 산자락에 걸쳐 축조된 산성으로,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된 복합식 산성으로, 테뫼식 산성이 기능을 상실한 후 포곡식 산성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규모는 테뫼식 산성이 둘레 350m, 포곡식 산성이 둘레 1,384m이다. 성내에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우물지, 여단지, 군창지, 봉서사 등이 남아 있다.
포곡식 산성에 대한 성벽 발굴 조사 결과, 동쪽 벽은 성벽을 중심으로 외호(外濠)와 내호(內濠)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흙과 돌을 섞은 토석 혼축 방식으로 조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쪽 벽은 삭토 기법으로 조성되었는데, 생토면을 편평하게 정지한 후 그 위에 다짐토를 성토하여 축조되었다. 건물지의 경우, 오랫동안 경작지로 사용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그곳에서는 각종 기와를 비롯하여, 분청사기, 백자, 토기,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등 일본 학자에 의해 ‘주류성(周留城) 한산설’이 제기된 이래, 건지산성은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다. 하지만 근래에는 ‘주류성 부안설’이 대두되면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건지산성은 금강 하류의 수륙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군사적 거점이었으며, 한산 읍성 축조 이전에 한산 지역을 다스렸던 중요한 지방 거점성으로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