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 분사시랑(分司侍郎)으로 묘청(妙淸)·유참(柳旵) 등과 함께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토벌하러 온 김부식(金富軾)이 보낸 조유문(詔諭文)을 받아보고 오히려 묘청 등을 참살한 뒤, 묘청의 목을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 윤첨(尹瞻) 등을 시켜 개경(開京)에 보내고 항복을 청하였다.
윤첨 등이 투옥되었다는 소문이 있자 다시 서경인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에 의하여 서경이 함락되자 자신은 분사(焚死)하고 처자는 동북 제성(諸城)의 노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