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화우(和宇), 호는 정곡(鼎谷). 조은(曺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고, 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曺世明)이며,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9년 전라도도사로 지방을 순시하던 중 보성에 이르러 부안에서 데려온 관기(官妓)와 이별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이 당시 반란음모로 처형된 정여립(鄭汝立)의 죽음을 슬퍼한 것으로 오해되어, 정여립의 일파로 몰려 국문을 받다가 이듬해 장살(杖殺)되었다. 국문을 받던 중 읊은 시가 ‘난언(亂言)’이라 하여 죽은 뒤 추형(追刑)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