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이순(而順). 아버지는 참봉 조경남(趙竟男)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부장(禦侮部將)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원수 장만(張晩)의 군막에서 군무를 도왔다.
안현(鞍峴)의 전투에서 주장(主將)이 도망하려 하자 검을 어루만지며, “나라의 존망이 이 한번에 있는데 장군은 어찌 이러는가?”고 꾸짖으니 주장이 크게 부끄러워 하였다. 이에 용기를 북돋아 군사를 독려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난이 끝난 뒤 공을 포상할 때 포상을 담당한 자가 이를 숨겨 단지 원종공신록(原從功臣錄)에만 수록되었다. 이에 벼슬에 뜻을 잃고 향리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